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압도된 것은 이 세종이란 사내가 1443년에 훈민정음을 완성해 놓고선 바로 일반 백성에게 반포하지 않고 3년(!) 동안 기다리며 말하자면 테스트를 해보고 쓸 만하다는 자신이 생긴 다음인 1446년에야 반포한 점이다. 뭐랄까 당시 조선의 땅 한자락에 대한 처분권, 백성 한 명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당신 세종대왕님께서 모두 쥐고 있다는 도저한 절대군주로서의 자신감이 없으면 감행할 수 없는 일종의 사치이면서도 또한 그러한 절대권력자가 빠지기 쉬운 자만과 조급함의 유혹을 대단한 자제력으로 극복한 게 이 '훈민정음 창제 3년 후 반포'라는 기막힌 기다림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국어 경찰 활동은 집안뿐 아니라 대외 순찰로도 이어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고문에서 '반듯이'와 '닥아 내어'에 줄을 긋고 '반드시' '닦아 내어'라고 고쳐놓은 사람은 보나마나 우리 아버지였다. 온 가족이 외식을 하러 갔던 날, 잘 가던 횟집 문 앞에 버티고 선 아버지는 들어갈 생각을 안 했다. 대신 사장님더러 밖으로 좀 나와보라고 불러냈다. 새로 바꾼 발 매트에 적힌 말이 문제였다. "어서 오십시'요'가 아이고요, 어서 오십시'오'가 맞습니더, '오'." 아버지는 피카소가 손전등으로 소를 그리듯 허공에 커다랗게 '오'라고 적어 보였다.
얼마 전. 지난 16년간 나를 위로해 주고 지켜 주었던 내 강아지 토토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가 버렸다. 토토가 치매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토토를 돌보기 위해 거의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짐승도 나이가 들면 사람이 노환을 앓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 굉장히 핍진한 슬픔을 환기하고 있었다. 토토는 머리를 요란하게 흔들고, 정처 없이 헤매며, 어두운 구석으로 처박히듯 들어갔다가는, 이윽고 함정과 늪에 빠진 것처럼 되돌아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누구는 안락사를 시키라는 소리도 했다.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나의 나머지 인생이 어떠할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인생은 결국 망한다.
우리는 가족이란 관계가 필연이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생각하는데 사실 가족 또한 우연히 만들어진 관계 아닌가. 혈연으로 이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정해진 운명에 놓인 관계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싸움이 일어난다. 그 운명적 관계 안에서 내가 너를 지배해야 한다는 알력이 형성된다. 사실 그런 관계란 인간과 인간이라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선 존재할 수 없는 폭력 아닌가. 그래서 누구를 만나면 사람이 행복한 것인지, 누구와 함께할 때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지, 결국 그런 행복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되는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동시에 그런 행복이란 결국 우리의 주변에 널려 있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가 힘 없고 가난한 사람 편에 서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로 하더라도요.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으로 바뀌면서 정부는 힘 있고 가진 사람의 친구라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때로 오면서는 그 인식이 더욱 강화되었구요. 사람들 사이의 신뢰, 협동하려는 생각, 남에게 양보하는 자세 같은 것들을 통틀어 사회적 자본이라고 부르지요. 최근의 두 보수적 정부가 저지른 최대의 실정은 바로 이 사회적 자본을 역사상 최저의 수준으로 낮아지게 만든 것입니다.
부모님께 커밍아웃할 때 준비를 철저히 했다. 어머니나 아버지 어느 한쪽에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양친이 모두 한 자리에 계시고, 주변에 나를 포함한 우리 세 명만 있어야 하며, 식당 같은 곳이 아니라 반드시 집 안이어야 했다. 그리고 두 분의 건강 상태가 좋고 다른 큰 걱정거리가 없어야 했다. 즉, 부모님 주변에 신경 써야 할 요소가 없고, 오로지 이것만 깊게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나는 커밍아웃을 했다. 또한 지나치게 감정이 올라올 것을 대비해서 가능한 한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몇 가지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한 후 자리를 비워 부모님 두 분이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열차 예약까지 마쳤다.
파티에 현역 병사를 불러 사회를 보게 했다는 그 사실 자체는 평소 군의 문화에 비추어봤을 때 놀랄 일도 아닙니다. 그뿐입니까? 운전병을 사적인 용무에도 활용하는가 하면 테니스병이 군인 가족에게 교습을 하고, 군 골프장에도 병사들을 배치하는 군 아닙니까? 중령이 장군의 학위논문을 대필해주는 사례는 또 어떻습니까? 더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오늘날 군에서 장군의 명예라는 것이 사실은 부하로부터 존경과 선망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일탈하여 사적인 권력 행사와 특권에서 오는 허영심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문입니다. 만일에 김제동 씨가 이걸 풍자한 것이라면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백남기 농민의 유족들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나선 극우단체마저 등장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직격당해 의식을 잃던 순간 현장에 있던 빨간 우비 차림의 남성이 백씨를 타살한 의혹이 있으니 이를 규명해달라는 수사의뢰서를 경찰에 제출한 단체들도 나타났다. 어쩌다 한국사회가 이 지경까지 추락했을까? 진보는 고사하고, 민주는 고사하고, 상식은 고사하고, 인륜조차 사치인 사회가 되었을까?
2007년 들어서면서 정국은 서서히 대선 정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2~3월이 되었는데도 MB는 경선 캠프를 꾸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MB에게 "빨리 짜임새 있는 캠프를 꾸려야 한다. 본격적으로 진용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MB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며칠을 기다리다가 세 번째로 얘기 했을 때에야 "그러면 이상득 의원과 상의해서 해보세요. 이재오 의원은 절대 모르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MB는 왜 이재오 의원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했던 것일까.
살다 보면 운이 좋아 성공한 사람들 중에 "운도 실력이다"라며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진짜 따지고 보면 "실력도 운이다"라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실력이 좋아서 우연으로서의 운이 좋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우연히 운이 좋아서 실력이 좋아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최고의 재능과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실력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능력이란 별 볼 일이 없는 것"이다.
어느 신부님 방에 걸려 있는 액자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을 천국으로 만들겠다.' 라는 굳은 다짐이 담긴 문구였다. 신부님 이야기를 듣고 되돌아 본 나는 그저 그런 사축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라도 더 아이들과 만나고 싶어하던 교육실습생은 동료교사들의 주당시수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버렸고 연간계획을 수십 차례 세우고 다시 고치고 하던 어린 초임교사는 방학날짜와 공휴일 숫자를 줄줄 외우고 있는 날짜 계산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A는 인생에서 거쳐온 고비라곤 수능밖에 없는 지루한 서사의 인간이었다. 세상에 대해 평론하고 싶은 것이라곤 맛집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이 가게 점원 태도가 어쩌네 저쩌네' 하며 아르바이트생의 인성을 운운하는 A를 볼 때면 나는 그를 멸시했다. 사랑이 도취나 찬양이 아닐 수 있고, 어떤 욕구의 교환일 수 있다는 걸 A는 내게 가르쳐줬다. 내가 그를 멸시했던 것은 그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나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핵에너지와 관련된 사업처럼 갈등을 많이 내포하고 있는 사업일수록 충분한 정보제공을 기반으로 하여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통해 국민들의 알권리가 실현되고 있으나 핵에너지와 관련된 정보는 많은 경우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업무의 공정한 수행 등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거나, 법인 또는 개인의 영업·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고 하여 비공개로 결정된다.
동생의 시댁형님은 올해 1월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친정이 발리인 시댁형님은 새로 태어난 손자를 친정부모님에게 보여드리고자 발리에서 아들의 세례식을 하기로 하였고 동생의 시아주버니도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들을 데리고 같이 처가댁인 발리로 갔습니다. 예전부터 계획이 되어 있던 일정입니다. 단지 아버지께서 운명하시는 순간, 발리에 동생이 머물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을 하며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겠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 하루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는 우리 가족들을 모욕하는 일은 그만두기 바랍니다.
'소박하고도 진실한' 이 가족 이야기를 보며 오히려 가족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정신분열적인 데가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가족을 추켜올리는 시도는 가족의 수난을 은폐하거나 예고한다. 쉽게 가치를 부여하면서 쉽게 내팽개치며, 해체의 위협을 가하고 있을 때 가장 숭배를 바친다. 무엇보다 우리는 가족을 공동체의 원형으로 소환한 다음 곧장 공동체의 실패를 떠안겨버린다. 공동체와 가족의 실제 관계는 정확히 그 반대다. 공동체가 가족의 원형이며 가족의 고난은 공동체의 실패를 보여주는 증상이다. 그러니 사회적 삶의 문제를 더는 가족에게 미루지 말아야 하며 그 무거운 짐으로부터 가족을 내버려두어야 한다. 특히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는.
여성이 세상을 구하거나 대단한 일을 해내려면 보통 이상의 능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원작 '고스트버스터즈'만 해도 네 명의 남자들은 그리 잘난 게 없었다. 리메이크의 여성들과 똑같은 보통의 인간들이다. 별 거 아닌 보통의 남자들은 그동안 세상을 구하고, 엄청난 일을 하면서 영화와 소설에 등장했다.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고스트버스터즈'는 별 것 아닌 역할교대로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이제 보통의 여성들도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남자들은 더욱 멋있어질 필요가 있다.
꽉 끼는 스키니진을 입으면 생리통이 심해진다? → YES 스키니진으로 골반을 꼭 죄고 있으면 골반과 자궁의 원활한 혈액순환을 방해해 생리통이 심해질 수 있다. 또한 생리할 때 분비된 프로스타글란딘이 혈액순환을 통해 없어져야 생리통이 생기지 않는데 꽉 끼는 옷을 오래 입고 있을수록 프로스타글란딘이 오래 머무르게 되어 통증이 더 오래갈 수 있다.
지도에서 집 근처 10km 기공소를 찾아보니 60곳이더라고요. 15곳은 이메일로 지원하고 45곳은 제가 직접 찾아갔어요. 제 소개가 담긴 이력서와 (지금까지 만든 작품이 있는) A4 23장짜리 포트폴리오를 들고 갔죠. 60곳 중에 2곳에서만 '안 된다'는 답장을 받았어요. 나머지는 전혀 연락이 없었고요. 일단 외국인이라 꺼렸고, 두 번째는 한국 학위는 인정할 수 없다, 세 번째는 언어의 문제였어요. 단 한 곳도 안 되니까 그때는 너무 충격이 컸어요. 내가 독일에서 일할 수 있을까 좌절했죠.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이들은 흔히 "자식이 성소수자면 부모들은 얼마나 괴롭겠는가"라고 공격하곤 한다. 하지만 엄마는 처음 참여한 부모모임에서 "우리 아이가 성소수자라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겪을 사회적인 차별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울면서 말했다. 세상에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면 어떤 부모님도 자녀가 성소수자라서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